나의 부친은 은행원으로 전근족. 심할 때는 2년 간격으로 이동하는 일도.
이것은 나의 경우이니까 모든 사람은 아니겠지만, 전학생은 밀찍히 바라보거나 괴롭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친구가 생긴 것은, 아버지가 본점 업무로 돌아올 수 있게 되고 나서, 고교생 때 라라는게 내 일이지만 불쌍함.
나도 굴절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서론으로, 시동생의 신부가 나를 괴롭히던 사람이었다는 결론.
실은 나는 첫만남에서는 전혀 깨달지 못했다. 몇번이나 전학가고 몇번이나 괴롭힘을 당했으므로 무시 검정 일급이었던 탓인지, 생명과 관련된 심한 집단 괴롭힘은 아니고 친구로 끼워주지 않거나 실내화 숨기기 라든가 교과서에 낙서 쓰기라든가 그림자에서 험담하는 거라 익숙해져 있었으므로, 특별히 인상에 남는 사람이 아니었다=시동생 신부
시동생 신부는 나의 얼굴을 보고 혹시 어쩌면 하고 생각하여, 시동생에게 나의 구성(旧姓)과 부모의 직업을 듣고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결혼식 전에 우리 집에 도게자하러 왔어.
「제발 결혼식에서 심한 짓 하지 말아 주세요. 그이도 부모님도 모르니까, 말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집단 괴롭힘이란 단어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정말로 무슨 일인지 몰라서 「누구로 잘못 본 거 아닙니까?나는 짐작이 없어요」하고 돌려 보내니까
시동생에게 「무엇인가 꾸미고 있다! 보복당한다! 결혼식 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시동생은 내가 심한 짓을 하고 있다고 믿어 버려서, 싫어하는 시동생 신부 질질 끌고 우리 집에 호통을 치며 들어왔어.
나의 남편과 나와 시동생과 시동생 신부가 서로 이야기해도, 조금도 이야기에 아귀가 맞지 않는다.
남편이 「어떤 근거로 우리가 당신에게 보복한다고 말하고 있는 건가.」라고 물어도 대답을 할 수 없는 시동생 신부.
그래도 겨우 「○○초등학교 5학 4반 기억나지 않습니까?」라고 말해서 겨우 생각난 나.
「그 집단 괴롭힘 그룹 가운데 한 사람.」
그리고 나서는 이젠 기진맥진. 시동생 신부는 울고, 시동생은 사과하고. 남편은 화내고
나는 질렸고. 그래도 시동생은 시동생 신부와 결혼했했으니까 좋았던 거겠지만.
677: 무명씨@HOME 2013/11/18(월) 16:20:07. 88
>>676
수고〜
괴롭힌 아이는 괴롭힌 일은 잊어버리는 일이 많다고 말하지만 시동생 신부의 기억력이 좋은데 감탄했다ㅋ
5학년 때 일은 희미하게 밖에 기억하지 못한다ㅋ
679: 676 2013/11/18(월) 16:28:53.38
>>677 사실이예요〜
괴롭힘을 당한 쪽은 잊지 않지만, 괴롭힌 쪽은 잊는다는 것이 보통인것 같으니까.
시동생 신부가 시동생에게 말하기로는, 집단 괴롭힘 주모자에게 아무래도 반항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고.
시골 초등학교에서 어렸을 때부터 낯익은 사이 상태. 초등학교도 2개 클래스 밖에 없어서
힘관계는 계속 변함없고, 주모자가 나를 무시하라고 말하면 거역할 수 없었다고 해요.
그래도 쭉 죄악감이 있어고, 나를 잊었던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 시골이 싫어서 대학 떄부터 뛰쳐나왔는데, 나를 우연히 만나 버려서
딱한 사람이라고도 생각해요=시동생 신부.
681: 무명씨@HOME 2013/11/18(월) 16:32:29.28
>>679
시동생 신부와 비슷한 성쟝환경이라 동정하는 부분도 있는데
>「무엇인가 꾸미고 있다! 보복당한다! 결혼식 할 수 없다!」
이건 아닌데.
시동생 신부는 무슨 일 있을 때마다 피해자인 척 하면서 울며 매달려 올 것 같으니까 조심해.
683: 676 2013/11/18(월) 16:43:30.32
>>681
그렇네〜 거역할 수 없어서 한 짓이라고 해도, 피해자인 척 하는 것은 이상하지요.
음, 나는 전근족에 질려서 현지 밀착 남편과 결혼했고, 시동생은 공무원 전근족으로 전전하고 있으니까 시동생 부부와는 시댁에서 만날 일 조차 드물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조심해서 지나칠건 없지요. 고마워요.
引用元: ・【義兄嫁】嫁同士ってどうよ?85【義弟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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