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1일 금요일

【2ch 막장】어머니가 30세에 암으로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한신 대지진으로 돌아가셨다. 4살이던 나는 어머니의 이복 오빠네에 맡겨져 있어서 살았다. 하지만 백부는 거의 집에 돌아오지 않고, 백모는 나를 방해물 취급해서 방치아가 되버렸다.



879: 名無しさん@おーぷん 2018/06/01(金)10:11:26 ID:PzB
옛날, 방치아였다.
어머니가 30세에 암으로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한신 대지진으로 돌아가셨다.
4살이 막 되었던 나만은, 그 때 일시적으로 어머니의 이복 오빠(백부)에게 맡겨져 있어서 살아났다.

백모는
「맡기지 않았으면 귀찮은 애들이 같이 사라졌을텐데」
하고, 내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나를 향해서 말햇다.
하지만 아이의 감각이란 민감하니까,
『죽으면 좋았는데』
라는 말을 듣는다는 것은 잘 알았다.

백부는 혈연이 희박한 나를
「여동생의 유자녀다」
라고 나를 인수해주었지만, 의사였으니까 바빠서, 집에 거의 돌아오지 않았다.
백부와 백모에게는 두 아이(사촌자매)가 있어서, 확실히 초등학교 중학교 고학년이었다.
백모는 나를 죽었으면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집에 있을 곳이 없고, 사촌자매들도 백모에게 맞춰서 나를 방해물 취급하고 괴롭혔으므로, 자연히 방치아가 됐다.

나는 항상 밖에 있고 외로웠으니까, 친구가 될 아이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4살, 어머니의 모습은 자택이나 병원 침대 위에서 밖에 기억이 없는 나는, 사회적인 행동이 몸에 배어있지 않았다.

무엇이 어른의 상식이고, 무엇이 비상식인지 전혀 몰랐다.
어른에게서 혼나도,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다.
그 때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하면
・타인을 상처입히면 안됩니다.
・타인의 물건을 가져가면 안됩니다.
・타인의 집에 마음대로 들어가면 안됩니다.
・타인의 물건을 탐내서는 안됩니다.
・인사를 합시다.
・감사를 합시다.
정말로, 이런 사소한 것 뿐.
친구에게 초대받아 놀러가도 몇시까지 돌아가는게 상식적인지, 설사 초대받았다고 해도 빈도가 많으면 때로는 사양한다, 뭔가를 주고 받았으면 자신도 답례를 한다, 준다는 말을 들어도 쉽게 받아가면 안된다, 그렇게 간단하고 당연한 것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상식을 가르쳐 준 것은, 나의 피해자가 된 어머니들이나 이웃집 아저씨나 아줌마였다.
나를 경계해서 관심을 돌리게 하기 위해서인지, 공원 어른들이
「너는 누구야? 아버지하고 어머니는? 집은 어디야?」
하고 질문했다.
내가 서투르지만 부모님은 없다는 것・집에 들여보내 주지 앟는다는걸 전하니까, 동정하거나 참견을 해준 사람들이 나를 교육해 주었다.

공원에는 시계가 있는데,
「시계가 저 모양이 되면, 다들 집에 돌아가는 거야」
하고, 더 이상 놀이 상대를 붙잡아서는 안되는 시간을 가르쳐 주었다.
「집에서 놀자」고 권유해도 우리 엄마처럼 병든 사람이 있는 일도 있다, 그러니까 초대받아도 집에 있는 사람에게 「괘찮아」라고 말해주는지, 제대로 허가를 받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과자를 받거나 장난감을 빌려달라고 해서 받는건 좋지만, 받기만 해서는 친구가 사라져버린다는걸 가르쳐 주었다.
위험으로 이어지는 일이나 잘못된 행동을 하면, 체벌을 가해서도 꾸짖어 주었다.
(왜?)
라고 생각하는 것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주위 어른이 가르쳐주는 룰을 하나하나 배워갔다.

상식을 몸에 익히게 되면서, 부모님이 없으면 내가 한 것에 책임을 지고 허락해주는 어른이 없으니까,
(나는 할 수 있는게 적구나)
라는걸 깨달았다.
동시에 내가 하려고 하는게 올바른 일인지, 올바르지 않은 일인지 판단도 할 수 없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됐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 앞에 있는게 괴로워져서, 사람이 오지 않는 장소에 숨어버리게 됐다.
혹은 백부의 집에서 걸어서 2시간 정도 되는 도서관에 혼자 가서는, 책이나 그림연극을 보면서 지냈다.
도서관은 급수기도 있고, 화장실도 있고, 지붕도 있고, 아주 지내기 좋았다.

하지만 여름 날, 백모와 사촌자매가 풀에 가고 나는 집에서 쫓겨난 8월 상순.
물도 못 먹고 쫓겨났으니까, 도서관까지 가는 길에 열사병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어디의 누구인지도 모르는 나를 위해서, 지나가던 아줌마가 도와주어서 집에 데리고 돌아가서 물과 마실걸 주었다.
아줌마는 굉장히 화가 나있어서, 나는 계속
(또 내가 잘못된 짓을 했으니까 혼이 나는 거구나)
라고 생각하고, 희미한 의식으로 계속 「죄송합니다」라고 헛소리처럼 중얼거렸다.

나의 기억은 거기까지로, 그 뒤 얼마간 정도 기억이 없어져 있다.
다음 기억에서는 백부하고 둘이서만 살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20년 지나서 알게 됐지만, 사촌 자매들은 백모가 데려온 아이로, 백모는 백부하고 재혼하고 나서 갑자기 2세와 3세인 사촌자매들을 데려온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백부는 시원스럽게 이혼하고 백모 가족을 놔두고 왔다고 한다.

나는 백부가 데려오고 나서도 나이에 맞는 사회성이 몸에 익지 않았으니까, 초등학교에 가고 나서도 고생했지만, 그래도 근처의 어머니들이나 아저씨 아줌마들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사람 다운 행동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도 당시의 나를 훈육해준 어머니들과 가까운 연령이 됐고, 같은 입장이 되어보니까 다시 고마움을 느꼈기 때문에 써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주 남에게 혼이 나면 화내는 부모가 있지만, “아이의 장래를 좁히지 말아주세요” 라고 전하고 싶어.
어른이 요구하는 행동을 할 수 없는 아이는, 그렇다고 깨달은 순간, 타인의 시선에 얽메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돕니다.
적절하게 행동하는 법을 알려주세요.


마지막으로 전 사촌 자매들, 전 백모씨.
좋은 아버지이고, 남편이고, 단 혼자서 가정 수익을 지탱해주던 백부를 빼앗아 버린 형태가 되어서 미안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라고 백부에게 부탁했는데, 백부가
「(나)가 용서한다면」
이라고 말했는데,
내가 용서하지 않아버려서 밑바닥에 떨어뜨려 버려서 미안했습니다.
부모님의 유품을 마음대로 버린 것, 두 사람의 돈을 사촌자매를 위해서 써버린 것, 나의 몸에 몇번이나 바늘을 찌르거나 향불을 가져다 댄 것, 나에게는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던 것.
나는 평생 용서하지 않아요.

두 번 다시 백부의 유산을 노리고 나타나지 말아주세요.

何を書いても構いませんので@生活板61 より
http://kohada.open2ch.net/test/read.cgi/kankon/1526262926/


댓글 없음:

댓글 쓰기

 

Contact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