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4일 목요일

【2ch 막장】10인 가족이 사는 시댁에서 부려먹히며 「나만 참으면」「노력은 반드시 누군가가 봐준다」고 생각하고 참고 견디다, 조카딸이 「외숙모는 무엇을 위해서 사는 거예요?외숙모 같은 인생이라면, 지금 당장 죽는게 나아」


929: 名無しさん@おーぷん 2016/02/03(水)18:42:19 ID:gH7
에너me 이야기라 얻어맞을 것 같아서 쓰고 버림.
결혼하고 15년, 완전 정말로 에너me였다. 머리에 꽃이 피어서, 좋은 꼬라지였다.
「나만 참으면」
「아이가 생기면, 이 사람도 반드시 바뀐다」
「고자질이라니 상스럽다」
「노력은 반드시 누군가가 봐준다」
「성의가 통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있을리가 없다」

전부 진심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면~」은 실현되지 않았다.
이것은 나중에 알았지만, 남편, 나와 결혼전에 정관수술 했다….

결혼 뒤에는 바로 동거.
시부모님・남편・나・남편 형・큰 시누이(이혼녀)・큰 시누이 딸 2명・작은 시누이・시할머니 10인 가족.


10인분의 가사는, 그것만으로 하루가 끝날 정도의 분량.
세탁기는 하루 몇번이나 돌리지 않으면 안 되고, 식사도 세번 세번, 시아버지와 남편과 시누이와 조카딸들의 도시락 만들고, 시할머니 개호하고, 조카딸들이 돌아오면 돌보고…장보러 갈 틈도 없다.
모두 세면실을 사용한 뒤에는 마루가 질퍽질퍽하고, 화장실도 아침 남편 등이 출근한 뒤는 엄청난 악취+마루의 더러움. 덧붙여서 화변기
(쪼그려 앉는 변기).
받는 생활비는 12만.
충분하잖아?라고 생각할 테지만, 10인분이면 아슬아슬.
여기로부터 시할머니의 기저귀나 의료비, 조카들의 월사금이나 간식비도 내지 않으면 안 되고.


밤은 시아버지의 등물을 한다. 역시 옷을 벗는 것은 거부. 등 맞았지만, 거부를 관철했다.
시어머니는 공기.
큰 시누이는 우울증이라며, 하루종일 멍- 하니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휴대폰이 보급되고 나서는 쭉 휴대폰 만지게 되었다.
작은 시누이는 유일하게 제대로 나와 대화해주는 아이였지만, 어쩔 수 없는 DQN.

남편 형은 자신 이외의 모두가 싫고, 특히 여자가 싫다고 말하는 사람. 조카딸들을 그늘에서 학대했다(육체적 폭력). 그만두게 하면 침을 뱉었다.
남편은 공기. 결혼하니까 공기가 되었다.

930: 名無しさん@おーぷん 2016/02/03(水)18:42:31 ID:gH7
그래도 나는 바보니까
「나만 참으면」「고자질이라니 상스럽다」「노력은 반드시 누군가가 봐준다」「성의가 통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있을리가 없다」
라고 생각했다.

각성한 것은, 조카딸에게
「외숙모는 무엇을 위해서 사는 거예요?」
라고 진지한 얼굴로 질문 받았던 것.
조카딸은 이미 고교생이 되었다. 성실하게는 다니지 않았지만.
조카딸은 2명 모두 내가 기른 거나 다름없어서, 처음에는 맞고 차이고 반발했지만, 그 때는 이미 나를 따르고 있었다.
그 조카딸에게
「외숙모나 엄마 같은 인생이라면, 지금 당장 죽는게 나아」
라는 말을 듣고, 진심으로 쇼크받았다.

작은 시누이에게 그걸 불평했더니
「조카딸, 그거 말해버려? 말해버려? 란 느낌이네~」
라는 말을 들었다.
시누이어로는
「다들 생각하고 있었지만, 일부러 말하지 않았는데」
라는 의미.
(유일하게 이야기가 통한다고 생각했던 작은 시누이조차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해서 쇼크가 배로 늘었다.

저녁밥 찬거리를 장보면서,
「나 어째서 그 집에 있는 거지」
라고 생각했다.
남편과 결혼했기 때문이다.
남편과 행복해지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나, 전혀 행복하지 않다…


그 때, 남편을 더이상 전혀 사랑하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존경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시부모도, 시할머니도 싫었다. 남편 형에게 참을 까닭은 없었다.
정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보살펴준 조카딸 뿐이었다.

931: 名無しさん@おーぷん 2016/02/03(水)18:42:38 ID:gH7
그 밤, 조카딸 2명과 교섭했다.
어른들은 말해도 소용없다는걸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파트타이머로 나가고 싶다. 그 동안 가사는 할 수 없다. 너희들도 고교생이니까, 가사는 분담해줘」
그때까지는 에너me로 내가 전부 했다.
조카딸 「이제 큰 삼촌에게 맞아도, 10배 반격할 수 있는 나이니까 괜찮아」
하고 OK 해주었다.

그 뒤 슈퍼 파트타이머에 응모해서 시원시럽게 채용.
시아버지와 남편은 싫어했지만
「가계에 보탤테니까」
해서 어떻게든 설득했다.

그리고 나서 2년.
시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조카딸은 2명 모두 취직했다.
저금이 겨우 7자릿수가 되고, 남편에게 이혼을 선언할 수 있었다.
아직도 이혼 성립에는 멀었지만,
시댁은 나왔고, 지금은 독신 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 40대 중반이 되어 버렸다.
여자로서는 이제 무리이지만, 인간으로서 다시 시작 하겠다
고 생각한다.

何を書いても構いませんので@生活板 18 より
http://kohada.open2ch.net/test/read.cgi/kankon/1453036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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