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7일 목요일

【2ch 막장】할머니가 알츠하이머 발병, 어머니가 개호를 했는데 아버지는 전혀 돕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암에 걸려 입원하게 되자 아버지는 「도망칠 생각이냐!!」



5: 名無しさん@おーぷん 2016/03/05(土)15:39:55 ID:qod
조모가 50대에 알츠하이머 발병했다.
당시 어머니는 20대, 나는 2살이나 3살 정도였다.
철 붙었을 때부터 어머니는 할머니(어머니에게는 시어머니)의 개호를 했다.
아버지는 개호는 일절 돕지 않았다.

나는 조모가 와병생활이 되고 나서 돕게 되었다.
배회하고 있었던 때는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해도 조모에게는 어머니가 가까이 가게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때 조모를 따라다니기만 해서, 지금 생각하면 감사 밖에 없지만 당시는 외로웠다.
적어도 아버지가 있어 주었다면 달랐을 테지만, 아버지는 술 냄새 풍풍 하며 매일 저녁 0시 쯤 돌아오고, 집에서 밥도 거의 먹지 않았으니까 다른 집 사람같았다.

내가 고3때, 어머니가 암이 되었다.
당시 어머니 40대.
명백하게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에 「병원 가요 가요」 말하고 있었는데, 개호가 있어서 좀처럼 나올 수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스테이지 2였다.



귀가해서
「어머니가 입원한다」
라고 듣자 마자 아버지는
「도망칠 생각이냐!!」
하고 고함 질렀다.
그렇게 인간에 대해서 환멸했던 적은 없다.
그것까지도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지만,
(할머니는 너의 모친이잖아)
하고 과연 생각했다.

어머니는 오랜 세월의 개호로 에너me라기보다 무기력인간이 됐기 때문에, 이모(어머니의 여동생)에게 전화해서
「도와 주세요」
하고 울면서 매달렸다.
이웃집 아줌마(동네 보스 아줌마 같은 사람)에게도 울면서 매달렸다.

정말 체면을 돌볼 때가 아니었다.
누구라도 좋으니까 수치를 버리고 붙잡지 않으면,
(정말로 어머니가 죽는다!)
고 생각했다.

그 뒤, 이모의 도움을 빌려서, 아버지가 없는 동안에 짐 정리해서 도주.
이모댁과 같은 시내에 있는 현립병원에 입원했다.
할머니를 두고 가는 것은 부끄러웠지만, 저울질을 하면 죄송하지만 어머니가 소중했다.
거기에 할머니는 어머니와 달리 수술하지 않으면 죽을 상태는 아니었고.

아버지는
「이혼한다!개호방폐로 위자료를 받는다!딸의 진학 비용도 내지 않아!」
하고 격노.
하지만 「암 수술로 입원」이 개호방폐에 해당될 리도 없고, 아버지의 주장은 인정받지 못했다.

6: 名無しさん@おーぷん 2016/03/05(土)15:40:07 ID:qod
동네 보스 어머니가 있는 말 있는 말 퍼트린 탓으로, 아버지는 위축당하고, 할머니의 개호를 조건으로 나는 고교 졸업까지 집에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동안에도 보스 아줌마외 동내의 어머니들이 여러가지로 도와줬고, 아버지가 취해서 나에게 고함지르거나, 조모의 증상이 심하거나 했을 때는 달려와서 도와주곤 했다.

어머니는 수술 뒤 2개월 정도 이모의 집에 있었고, 그 뒤 빈 집이었던 어머니의 친정으로.
나도 고교 졸업 뒤, 어머니를 쫓아서 어머니 친정에 들어갔다.
어머니의 현지답게 어머니의 친척이 많아, 아버지가 급습했을 때는 다같이 쫓아내줬다.

그 뒤 1년 걸려 부모님은 이혼 성립.
나는 2년 늦게 진학해서, 현재 대학생.
어머니는 그 후 한번 더 수술했지만, 건강해졌다.
원래 여자 아이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어머니는(초등학생 때 오냥코 클럽의 팬이 된 것이 계기라고 한다), 지금은 ℃-ute 라는 아이돌을 행복하게 응원하고 있다.

요전날 어머니가
「모닝구 무스메. 의 전성기를 놓친 것이 정말로 후회된다」
하고, 암에 걸린 것 보다 분한 듯이 말하는 걸 듣고, 무심코 웃어 버렸다.

[[오냥코 클럽]]
일본 아이돌 그룹 1980년대 중반 활동.

[[모닝구 무스메]]
일본 아이돌 그룹. 1998년 메이저 데뷔.

[[℃-ute]]


今までにあった修羅場を語れ【その17】  より
http://kohada.open2ch.net/test/read.cgi/kankon/1457020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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