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9일 월요일

【2ch 막장】나의 모친이 실은 맹독부모였다. 모친에게 거짓말 해져, 고등학교를 중퇴당한 걸 원망하고 있습니다.

나의 모친이 실은 맹독부모였다. 모친에게 거짓말 해져, 고등학교를 중퇴당한 걸 원망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굉장히 충격적이었던 체험 97번째
http://kohada.2ch.net/test/read.cgi/kankon/1372414683/

701: 생선 입에 문 무명씨 2013/07/09(화) 12:32:43. 19 ID:OXBcMdZ5

우리를 기르기 위해서 신체를 망가뜨릴 때까지 밤낮으로 일하고 있었던 존경하는 모친이
실은 맹독부모라고 알았을 때
초등학교6학년부터 가사를 했기 때문에 일상이 곤란할 것은 없는데
거짓말 해져 고교 중퇴시킨 것은 원망하고 있습니다


702: 생선 입에 문 무명씨 2013/07/09(화) 12:37:33. 58 ID:AKfbUnIM

>>701
kwsk





          
735: 701 2013/07/09(화) 20:57:35. 96 ID:OXBcMdZ5

자주 있는 이야기(?)일지도이지만 kwsk 되었으므로

초등학교의 저학년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했다.
그 후 아버지를 만난 것은 1도 뿐으로(2년반 후) 그 때
「이쪽에서 살지 않겠는가」라고 들었지만
「아버지는 애인과 살기 위해서 우리들을 버렸어요」라고 배웠던 나는
곁에 있던 어머니에게 매달려 울면서 「아버지 싫어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라고 거절했다.

어머니는 우리들을 학교에 보낸 뒤에 일하러 나가 겸업으로
물장사를 하며 밤 늦게까지 일하고 있었다.
가난해서 갖고 싶은 것도 사주지 못하고 남동생과 둘이서 난방이 없는 방(위험하니까)에서
어머니가 돌아올 때까지 배가 고픈 채 떨게 되거나 하며 괴로웠지만,
열심히 일하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 나도 가사를 배워서
초6정도에서 모든 가사를 했다.

고등학교 때
「불경기로 급료가 내렸고 게다가 집세가 올랐기 때문에 생활 할 수 없다, 양육비도 없고
너무 무리해서 간장이 나빠졌다, 이대로는 남동생도 학교를 갈 수 없다,
미안하지만 학교를 그만두고 일했으면 좋겠다」
라고 울면서 하는 말을 들었다.
대회를 목표로 해서 힘내고 있던 동아리에 미련을 남기면서도 내가 돕지 않으면 하고
어머니의 말에 따라서 일했다
18세까지는 10,000엔 이외 모든 급료, 18세부터는 어머니가 소개한 물장사 가게에서
일해서 매월 20만을 주고 있었다.

계속





          
736: 생선 입에 문 무명씨 2013/07/09(화) 21:03:07. 28 ID:dNUGScGI

지원





          
737: 생선 입에 문 무명씨 2013/07/09(화) 21:07:47. 22 ID:W6r0zlTw

싫은 예감 밖에 들지 않기 때문에 별로 보고 싶지 않다 w





          
740: 701 2013/07/09(화) 21:12:07. 33 ID:OXBcMdZ5

계속

그 어머니가 심근경색으로 급사했다.
장례를 하고 싶다고 어머니의 가족(조부모 사망)에게 연락했지만 「부의금 보내요」라는
대답뿐이었으므로 남동생과 두 사람이서 가족장으로 했다.
외로운 장례라서 어머니가 불쌍했다.
두 사람만 남게 된 불안 때문에 1주간 정도 머엉~하고 살았다.

그렇지만 지금부터 스스로 금전 관리도 하지 않으면 하고 서류 정리하고 있었더니
어머니의 통장이 몇권인가 나왔다.
잔금은 수십만이었지만 매월 20만, 6개월 간격으로 수십만,
수년 간격으로 수백만이 아버지로부터 입금되었다.
남동생과 상담하고 아버지와 연락을 하기로 했다.
아버지의 단서는 몇 년 전에 온 숙모로부터의 편지 뿐이었지만,
어떻게든 연락을 했더니 어머니가 말하고 있었던 것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이혼 원인은 자영업인 아버지 회사의 사무원이었던 어머니가 지불금을 유용해
도산 직전까지 몰아넣은 것이었고
아버지가 만나 오지 않았던 것도 내가 아버지를 거부했다고
아버지를 포함한 아버지 쪽 가족에게 면회 거부를 했기 때문이었다.
매월 20만은 양육비, 6개월 간격의 수십만은 수업료 그 외, 수년 간격의 수백만은
입학 자금이었다.
아버지는 우리 누이와 동생이 사립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듣고 있었던 것 같다.
이것들 이외에도 아직도 있지만 길어지므로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금 돈이 무엇에 사용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제일 화난 것은,
이혼 때에 단독주택에서 이사했기 때문에 임대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2 LDK 맨션은
임대는 아니고
아버지가 독신 때에 사서 지불 끝난 물건이었던 것.

지금은 아버지 회사의 전화담당 하면서 부기라든지 배우고 있는데
적어도 고교 졸업 자격 정도는 가지고 싶구나





          
744: 생선 입에 문 무명씨 2013/07/09(화) 21:29:19. 48 ID:k5Ofei/5

쓸데없이 모친의 옷차림이 좋거나, 모친에게 남자의 분위기…그런 건 없었어?





          
747: 생선 입에 문 무명씨 2013/07/09(화) 21:36:29. 03 ID:OXBcMdZ5

>>744
물장사를 하고 있었던 관계로 언제나 예쁘게는 하고 있었습니다.
남자를 데리고 돌아왔던 적은 없었지요.
남동생은 어머니의 소행을 흥신소에 조사하려 하고 있습니다만, , ,





          
742: 생선 입에 문 무명씨 2013/07/09(화) 21:13:50. 39 ID:W6r0zlTw

역시 쓰레기부모였는가 w





          
743: 생선 입에 문 무명씨 2013/07/09(화) 21:27:39. 59 ID:sPg22mOi

>>740 힘냈으면 한다, 절대 손해는 나지 않으니까 
이제 지금부터는 좋은 일 밖에 없기를 빈다 





          
745: 701 2013/07/09(화) 21:33:05. 07 ID:OXBcMdZ5

지원 감사합니다.

밤에 돌아오면 「착하게 잘 있었어」라고 「외롭게 해서 미안해」라고 말하며
꼬옥 끌어안아 주는 어머니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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