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 사이인 동수와 은미는 일찍 휴가를 얻어 남해안 어느 한적한 바닷가로 여행 갔다.
도착해 텐트를 치자마자 둘은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아직은 이른 휴가철이라 물은 차가웠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에게 문제가 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마냥 즐겁기만 했던 시간도 지나고 날이 저물어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검은 먹구름이 서서히 덮여오면서 바람도 조금씩 거세지고 있었다.
"동수야 이제 그만 돌아가."
"괜찮아, 쬐금만 더 하다가."
동수는 은미를 안심시키며 좀더 깊은 곳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은미는 내심 걱정도 됐지만 워낙 수영실력이 좋은 동수여서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 헤엄쳐 들어갔다.
그러다 너무 멀리 온 것 같아 뒤돌아보니 모래 사장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이 들어와 있었다. 가슴이 철렁한 은미가 동수를 부르려고 할 때 느닷없이 천둥 번개가 치면서 바다가 뒤집히기 시작했다. 곧이어 후두둑 하던 빗방울이 소나기가 되어 내리고 파도도 이에 뒤질세라 거세게 몸부림쳤다.
그제서야 동수는 다급하게 은미한테로 헤엄쳐 왔지만 심한 파도 때문에 불과 한 발 앞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은미의 손도 잡을 수 없었다. 수영이 미숙했던 은미는 "동수야 나 좀 잡아줘."하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 채 거대한 파도 속으로 삼켜지고 말았다.
그러나 수영이 익숙한 동수는 파도에 적절히 몸을 실어 간신히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그 날 이후로 졸곧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 때의 악몽이 계속됐던 것이다.
오늘은 그로부터 꼭 1년째 되는 날이었다.
밤늦게 겨우 잠이 든 동수가 갑자기 얼굴 위로 빗방울이떨어지는 것 같아 퍼뜩 일어났다. 그런데 이불 위로 물이 뚝 뚝 뚝 떨어지면서 바로 앞에 창백한 은미가 머리카락을 길게 풀어헤친 채 똑바로 서 있는 것이었다.
은미는 손을 내밀면서 천천히 동수한테로 다가섰다.
"동수야, 너무 춥고 외로워, 나와 함께 가, 어서…… 어서……."
"안 돼, 안 돼."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 동수는 그것이 꿈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 꿈이었구나, 꿈."
등에선 식은땀이 흥건하게 흐르고 있었다.
다시 잠들었다가 이른 아침에 깨어나 거실로 나간 동수는 순간 그 자리에 꼼짝도 할 수 없이 얼어붙어 버렸다.
현관 복도에서 자기방까지 물 묻은 사람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던 것이다.
2013년 10월 10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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