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무명씨@오픈 2014/09/13(토)17:15:03 ID:mH9B3TgBS
나는 첫아이(아들・당시 3세)를 20년전에 잃었다.
사인은 소아암이었다.
아들의 부친인 전남편은
병과 싸우는 아들을 포기하고 버린 쓰레기였다.
아들의 병이 판명될 때까지는, 귀엽다 귀엽다 하고 끈질길 정도로 염려하던 주제에,
암이라고 알면 「헛소리하지마」라며 이혼신고를 내던지고 시댁으로 돌아가 버렸다.
시댁은 입을 모아
「아들이 암이 된 것은, 며느리의 음침한 아우라 탓.
언제나 언제나 고개를 숙여대고. 이래서는 건강한 아이는 자라지 않는다」고 따져댄다.
내가 고개숙이는 것은 너희들 탓이다.
쓸데없이 우리 집에 돌격해와서 불평불만을 말하고, 실컷 먹고 어지르다 겨우 돌아간다.
남편은 항상 시댁의 아군이었다.
그래도 나는 아들을 위해서라면 억지로 웃음짓고 가사와 육아를 해왔다.
전남편은 문병조차 오지 않았다.
오는 것은 나의 부모님뿐.
부모님은「이혼해서 돌아와 줘. 이제 참지 않아 좋다.
아들은 우리들이 받쳐주자」고 말해 주었다.
이혼 할 때, 전남편은 제시한 액수보다 좀 많은 위자료를 주었다.
「모자라지만 저것은 나의 아들. 그나마 남은 정이다.
넉넉하게 줬으니까 절대로 이쪽에 관련해오지 않도록」이라고.
결국 아들은 죽어 버렸다.
나는 뻥하고 가슴에 구멍이 뚫려서, 우울 상태.
아들이 살아 있으면 사주었을 터인 완구나 가방을 모으며,
일과 자택을 오고가는 생활을, 아들이 스무살이 되는 해까지 계속했다.
그런 나를 떠받쳐 준 것이 동갑인 과장이었다.
그는 한쪽 발이 의족인 사람.
어릴 적에 사고로 부모형제, 다리를 잃은 사람이었다.
125: 무명씨@오픈 2014/09/13(토)17:15:27 ID:mH9B3TgBS
그와는 정말로 상처를 서로 핥는 사이로, 교제로는 발전하지 않았다.
다만 그저 함께 식사하러 가거나 하고 있을 뿐.
아들이 스무살이 되던 해, 아들의 슈트를 사서 방에 두었다.
문득 방을 둘러보자,
가방이나 학생복 같은게 온갖 곳에 가득했다.
이런 일을 해도 아들은 돌아오지 않는데 하고 과장에게 이야기하자,
「내가 끼어들어도 좋은 건지 모르겠는데.
아들은 살아 있으면 스무살이겠구나.
그 슈트를 계기로 용품을 사는 것을 끝내는게 어때?
이제 아들은 어른이다. 독립하는 거야.
걱정많은 어머니를 걱정하게 해서는 언제까지나 성불할 수 없어.」
「이제 나도 너도 인생의 반환점이다.
너 자신의 행복을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정말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요.
그 일주일 간 지난 다음 과장에게 「함께 행복해지지 않겠는가」는 말을 들었다.
50 가까이 되어 2번째 결혼.
과장과 부부가 도된지 금년 3년째.
지금은 정말로 평온하게 둘이서 살고 있다.
今までにあった修羅場を語れ【その5】
http://kohada.open2ch.net/test/read.cgi/kankon/1410252925/
2014년 9월 15일 월요일
>>Home >
[2ch 막장] >
분류:씁쓸한 이야기 >
분류:훈훈한 이야기 >
소재:결혼 >
소재:난치병 >
소재:이혼 >
소재:재혼
【2ch 막장】나는 첫아이(아들・당시 3세)를 20년전에 잃었다.
피드 구독하기:
댓글 (At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