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6: 무명씨@오픈 2014/10/04(토)18:49:23 ID:sagyfhCSx
이란성 쌍둥이인 동생과 심하게 차별 받으며 자랐다.
이유는 우리 아버지가 똑같이 쌍둥이이며, 장남제일주의인 조부모에게
「너는 동생이니까」하며 역시 심하게 차별 받으며 자랐으니까.
즉 우리 아버지는 쌍둥이의 동생 쪽.
자신이 쌍둥이 동생으로서 취급 받아 왔기 때문에,
자신의 아이라도 「쌍둥이 형」이라는 존재가 미웠던 것 같다.
여담으로 아버지 가계는 쌍둥이가 태어나기 쉬운 가계인 듯 해서, 그 외에도 쌍둥이가 몇 쌍인가 있다.
차별의 내용은 쌍둥이로 동갑인데 동생이 물려준걸 입게한다든가(어차피 작다)
공부책상과 가방은 동생은 신품, 나는 친척에게 받은 헌 것 이거나
동생은 자기방이 있는데 나는 복도에서 자게 한다든가.
나도 동생도 야구를 좋아하지만 동생은 리틀 리그에 돈 들여서 넣어주면서 나는 금지.
부활동조차 금지.
어쩔 수 없으니까 돈 들지 않는 육상 했지만 슈즈도 사주지 않고,
선배에게 고개 숙여서 헌 것을 받았다.
학원도 나는 가지 못하고, 당연히 입학할 수 있는 고등학교도 격차가 나타났다.
나는 「형인 주제에 아무것도 못한다, 모든게 동생에게 못미치는 쓰레기」
로서 고교 졸업할 때까지 살다가
졸업 뒤에는 현외에 취직해서 안녕.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반대해서 나를 감싸 주고 있었는데,
나를 편들다가 맞는 어머니를 보는 것이 싫어서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아버지가 보이는 범위에서는 나를 감싸지 않아도 좋아요」라고 부탁했다.
게다가 내가 고교생 때, 불륜 소동이 있고 그래서 완전히 정이 떨어진 것 같다.
불륜의 증거 가지고 나와 함께 현외에 나가서, 거기에서 이혼 제기.
증거가 있었으니까 비교적 착착 나아가 1년 정도 걸려서 이혼 성립했다.
도련님으로 자라서 스트레스에 약한 동생은, 부모의 이혼 스트레스로 대학에 다닐 수 없게 되서 휴학.
마더콘이었지.
마지막 정으로서 「너도 이쪽에 올래?」라고 연락했지만
「시끄러 등신」이라는 대답이 왔으므로 그 뒤는 무시&방치.
시간이 지나서 동생은 대학에서 제적되고, 어차피 취직도 못하고 니트화.
(이런 정보는 현지의 친구로부터 많이 들어 온다)
어머니는 역시 동생을 내버려두지 못하고,
나의 주소와 일터를 알려주지 않는 조건으로, 한 달에 한 번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데서 만나
동생을 「동생보다 뛰어난 (쌍둥이) 형같은 건 없다」 세뇌를 천천히 풀지…만,
좀처럼 잘 되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어느 날, 동생→어머니→나 경유로 편지가 보내졌다.
내용.
「조부모에게 물어보니까, 옛날에는 쌍둥이는 먼저 태어나는 쪽을 동생으로 하고 있었다.
지금은 먼저 태어나는 쪽이 형.
나(아버지)도 너(나)도, 먼저 태어난 쌍둥이였다. 즉 나=너였다.
몰랐던 탓에 실수로 동생인 쪽을 귀여워 했었다.
미안했다. 돌아와라, 다시 시작하자.
어머니와 나와 너와 세 명이서 다시 시작하자(키릭」
카피해서 어머니→동생에게 주었다.
동생, 완전히 아버지와 결별해버린 모양.
「그쪽 가도 괜찮아」라는 물음이 왔지만 「이미 늦었다」라고 거절했다.
나는 그렇게 까지 마음이 넓지 않다.
다만 집을 나와서 독립하는걸 돕도록, 어머니를 보내줬다.
동생이 완전히 집을 나오게 되면, 아마 동생과 어머니가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쪽에 친구도 애인도 있으니 괜찮지만, 동생에게는 이제 어머니 밖에 없으니까.
역시 금전 원조는 하지 않겠지만.
그렇게 되서 머지않아 아버지는 외톨이가 되지만, 아버지에게 만은 조금도 정이 들지 않으므로
꼴좋다wwwwwwwww 라는 생각 밖에 없다.
노망난 망할 조부모와의 객사해버리면 좋겠네(꽃 툭 정도의 느낌입니다.
727: 무명씨@오픈 2014/10/04(토)21:50:58 ID:dFd5I4WwJ
>>726
속이 아주 넓은 남자구나.
만약 같은 입장이라면 동생도 용서할 수 없었을거다.
이대로 부친 내다버리고 행복해져라.
復讐とまではいかないちょっとしたいたずらや仕返しを語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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