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에 서툴러서 작문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미안합니다.
군데군데 페이크 넣어두었습니다.
나는 이른바 사생아로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가족이 있고 단신부임해있는 것을 모르고 사귀고
나를 임신한 뒤 결혼할 수 없는 상대라고 알았을 때는 이젠 지우고 싶었다고 합니다.
당시 그에 따른 수라장이 있고, 재판도 하고 인지와 양육비를 얻어낸 것은
내가 2살이 될 무렵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태어난 나를 만나러 온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조부모가 건강하게 일하고 게셨고,
백모들의 협력도 있어서 아버지가 없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고생도 없이 성장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오던 양육비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끊어졌다고 합니다만,
어머니는 그 때는 이미 견실한 수입원이 있었으므로
특별히 청구는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바람기 발각된 뒤, 부인의 고향으로 이사하여
부인의 친정 가업을 돕게 된 것 같습니다만,
양육비가 끊어지는 얼마 전부터 가업이 기울어 금전 사정이 곤란해졌던 것 같습니다.
그 아버지가, 내가 성인이 된 해에 급사했습니다.
어떤 루트였는지는 모릅니다만, 어머니가 그것을 알고,
나를 장의에 출석시킬지 어떨지를 조부모님들과 고민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나 조부모님들에게 있어서는 미운 상대에 지나지 않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생부이며,
그 아버지와 만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의 기회를
본인의 마음을 무시하고 주위에서 마음대로 빼앗아도 좋은 걸까 하고 고민했던 듯 하고
결국 할아버지로부터
「이젠 아이가 아니니까 스스로 결정하세요」
라는 말을 듣고, 하룻밤 생각한 끝에 출석하기로 했습니다.
만나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다만, 아무튼 한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만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만나고 후회하는 쪽이 좋을거라고 생각했으므로.
당일은 할아버지와 함께 갔습니다.
할아버지가 상주인 아버지의 부인과 짧지만 무엇인가 이야기를 했고
힐끔 나를 본 부인은 묵묵히 인사를 했으므로 나도 인사를 했습니다.
나는 어디까지나 참석자 한 사람으로서 분향을 하고,
아버지의 죽음은 얼굴을 볼 일은 없었습니다.
(장례식 때에는 벌써 화장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는 지방이라고 합니다)
제단에 있는 아버지의 사진만 보았습니다만, 어떤 감정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아, 이런 얼굴 이란 느낌.
할아버지로부터
「부인과 이야기를 했는데,
저쪽 아이에게는 네가 오늘 왔다는 것은 이야기하지 않을테니까
모르는 척을 해두면 좋겠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해」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 말을 듣고 처음으로,
그러고 보면 여기에 피가 반 이어진 누나가 있구나 하고 생각하고
살그머니 할아버지에게 확인해보니,
앉아서 울고 있는 2명의 여성이 나의 누나라고 했습니다.
30세와 27세라고 하는 것은 나중에 알았습니다만,
20년 만에 만난 이복누나가 초미인이라던가 하는건
드라마 설정에 지나지 않구나-하고 멍하니 생각했습니다.
물론 누이와 동생의 정 같은 것은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다.
돌아가는 길에서 할아버지로부터
「무엇인가 생각한게 있었어」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전부다 남의 일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라고 대답하니까 웃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나의 내면에서 아버지에 대한 마음에
확실하게 종지부를 찍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할아버지는
「이것으로 끝나면 좋을 텐데」
라고 말했는데 그 때는 의미를 몰랐습니다.
792: 무명씨@오픈 2015/01/22(목)10:44:40 ID:0p0
요를 말하자면 아버지의 상속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변호사가 찾아와서,
상속에 관한서 뭔가 어려운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나는 「상속방폐」의 의사를 나타냈습니다.
그럼 후일 그렇게 서류를 준비하고 오겠습니다,
라는 듯한 말을 하고 돌아갔습니다만
그 변호사가 다시 찾아 오기 전에 장례식에서 본 그 자매가 찾아와서
아버지가 상당한 빚을 짊어지고 있었던 것을 이야기하고
「어머니와 자식 셋이서 분할해서 부담해야 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나로서는 어려운 일은 당시 몰랐습니다만,
처음부터 어떤 상황이든 방폐할 생각이었고, 그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당신들도 방폐하면 좋지 않습니까?
라고 말하니까, 비겁자라고 매도당했습니다.
같은 아버지의 아이인데, 너만 편안하게 살다니 비겁하다고.
어머니에 대해서도 상당히 모욕당했습니다.
누나들도 틀림없이 깊게 상처입었을 거고, 피해자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혼하지도 않았는데 아이를 임신한 어머니도 무책임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어머니도 속아버린 사람이며 당신들의 모친과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반론했습니다.
그리고 20년간 한번도 만나러 와주지 않았던 아버지의 뒷처리를
어째서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지,
아버지다운 일을 해준 것은(양육비) 고작 5년이 아닙니까 라고.
누나들은 양육비가 끊어져 있었던 것은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 뒤 잠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자택도 저당이 잡혀 있고,
지금부터 모녀 셋이서 어려운 생활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 할머니가 응대하고 (차내놓기라든가) 어머니는 나오지 않고 있었습니다만
마지막으로 누나(사실은 누나라고 쓰고 싶지 않지만)들이 어머니를 만나고 싶다고 말해서
어머니를 부르니까
「아버지의 무엇이 좋았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잊었습니다」라고 단순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풀렸습니다」라고 말하고 돌아갔습니다.
돌아갈 때
「나의 존재는 잊어 주세요. 나도 당신들을 누나라고는 생각하지 않을테니까」
라고 말하니까
「하지만 마음이 내꼈을 때라도 좋으니까 성묘 정도는 해줘」
라는 말을 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한번도 성묘는 가지 않았습니다.
갈 생각도 나지 없습니다. 아마 일생 가지 않겠지요.
今までにあった修羅場を語れ【その7】
http://kohada.open2ch.net/test/read.cgi/kankon/141908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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