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13일 일요일

【2ch 막장】열두살 이상 나이차가 나는 언니가 있다. 부모는 언니만 편애하고 나는 무시, 언니는 나를 괴롭혔다. 내가 결혼한 뒤, 언니는 불륜과 탁란으로 반품당했다. 그리고 내 남편을 노리기 시작했다.


122: 名無しさん@おーぷん 2015/12/10(木)09:12:57 ID:9X1
길고 시시한 문장입니다만, 함께해주신다면 다행.
귀찮은 분은 무시해 주세요.

나에게는 열두살 이상 나이차가 나는 언니가 있다.
원래 부모님은 만혼, 나는 늦게 생긴 계획외의 아이다.
확실히 말해서 필요 없는 아이였다.
부모님은 언니를 아주 사랑하고 있었지만, 나는 수업 참관도 운동회도 와줬던 기억이 없다.
그런 부모님의 애정을 빼앗긴다고 생각한 것일까, 나이가 떨어진 언니에게는 아이 때부터 괴롭힘 당했다.

내가 중학생이 되기 전에 그 언니가 결혼했을 때에는, 이것으로 언니로부터 해방된다고 기뻤다.
하지만, 시집간 뒤에도 언니는 빈번하게 돌아와서는 나를 구박, 부모님은 말리기는 커녕 함께 나를 괴롭혔다.



그런 집이 싫어서 고졸로 집을 나와 19세에 한살 연상의 남편과 결혼했을 때도, 굉장히 나쁘게 말을 했다.
(나는 빠른 생일이므로 학년은 하나 위.)
나의 남편은 당시 정시제 고등학교를 졸업, 진학하기 위해서 겸임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전일제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던 바보 ㅋㅋㅋ」
「밑바닥은 밑바닥과 결혼하네.」
「패배견은 평생 패배견이네ㅋㅋㅋ」
하고, 부모님과 언니는 정면에서 남편을 바보 취급했다.

123: 名無しさん@おーぷん 2015/12/10(木)09:13:31 ID:9X1
나의 남편은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부모님을 잃어,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았다.
중졸로 사이가 나빴던 친척에서 멀어진 남편은 전일제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일하면서 정시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뒤에도 진학이나 자격 취득에 대비해서 저금에 힘써서, 동갑 학생들이 부모의 비호 아래에서 놀고 있는 도중에도 일과 공부를 노력하고 있었다.
친가에 있을 곳이 없어, 진학보다 친가를 떠나는 것을 우선한 나는 그런 노력가 남편을 좋아하고,
「이 사람과 함께라면 열심히 할 수 있다」
라고 생각해서 결혼했다.

우리의 결혼 생활이 10년을 지났을 때, 그 언니가 불륜과 탁란이 들켜서 남편에게 반품되어 왔다.
언니 전 남편은 외자계 회사에 근무하던 엘리트였기 때문에, 언니는 우아한 전업 주부를 만끽하고 있었지만 불황의 여파로 도산.
재취직했지만 이전의 5분의 1 이하로 급료가 내려갔다고 한다.
그래도 사치하지 않으면 충분히 살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화려한 생활이 몸에 배어버린 언니는 자제 하지 못하고 방탕.
금융계 카드 융자에 손을 대고, 한도액 한계까지 복수의 회사에서 빌려서 호화롭게 노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아내에게 마지막 선언을 할 기회를 남편은 담담하게 노리고 있었다고 하며, 흥신소를 몇 년간 고용해서, 정기적으로 이혼 소재를 모으고 있었다고 한다.
결과, 언니는 스스로 만든 빚과
「나는 뻐꾸기 아이를 기를 생각은 없다」
며 부친을 모르는 혹 2마리와 반품당했다.

부모님은 이미 연금 생활.
언니처럼, 저축보다 사용하는 편을 좋아하는 부모님에게는 충분한 저축이 없어, 보기 힘들어진 우리 부부가 물자(쌀이나 소모품이나)를 공급하는 것으로 연명하고 있는 모양.
결혼 생활 10년 간, 우리 부부는 단기 대학을 졸업해서 남편은 정간호사, 나는 영양사가 됐다.
견실하게 저금한 덕분에 그 나름대로 생활에도 여유가 생겼다.
실컷 바보취급 당해왔으니까 나는 원조하는 것에 반대였지만, 너무 사람이 좋은 남편은
「자신의 부모에게는 효도하기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자신의 용돈을 깎아서라도 송금을 하고 싶다」
라고 말하기도 해서 원조를 해줬다.
돈을 보내면 낭비하기 때문에, 일부러 현물 공급으로 하고 있었다.

124: 名無しさん@おーぷん 2015/12/10(木)09:14:18 ID:9X1
거기에 언니가 굴러 들어갔다.
처음 부터 나쁜 예감은 들었다.

언제나 언니 편인 부모님은, 친가를 저당 잡혀서까지 언니의 빚을 떠맡았다.
그래도 건축년 20년 이상 지난 집에 대단한 가치가 있을 리도 없고, 돈 마련에 쫓기고 있다.

그 돈 마련의 일환인가, 남편에게 눈독을 들였다.

언니는 실컷 「밑바닥」이나 「패배견」이나 「거지」라고 남편을 바보 취급한 것도 잊고, 이번은 남편에게 추파를 던지게 되었다.
전화나 메일로
「아이 일로 고민하고 있다」
라고 불러내서는 틈만 있으면 호텔에 가려고 모션.
나 깎아내리기, 자신 추켜세우기 기본.

우리 부부가 맨션 구입을 생각하는 것을 알더니,
「가족이 함께 살아요」
라고 말했지만, 그 가족에 나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 일이 계속되고, 남편이 부모님에게 충고하듯이 말해도
「어머어머. (언니)쨩은 좋은 아이야」
하고 나에서 언니로 바꾸라고 말하는 상황이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쓸모없는 여동생보다, 언니 쪽이 이득이야. 아이는 귀엽잖아」
하며 부친 불명의 아이들에게까지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도록 했다.

이것에, 『외모는 곰, 마음은 부처』인 남편이 격노했다.
「세상에는 손을 내밀어도 쓸모없는 인간도 있구나」
라더라.
우리 부부는 돈이 없는 고생을 많이 했으므로, 계획적으로 피임하고 저축에 힘써 왔다.
목표 저금액까지 아이는 만들지 않고, 저금이 모이면 집을 사고 아이를 만들려고 부부로서 상담해서 결정하고 있었다.
그렇게 쭉 부부로서 노력해온걸 근거도 없이 「석녀」라고 부른데다가, 탁란・불륜이라는 행위를 반복해 온 언니를 충고도 하지 않는 부모님에게 정나미가 떨어졌다.

남편은 금전적인 원조도 검토하고 있었지만 백지.
나 자신은 이런 썩을 일가에 헛된 돈을 내는 것보다, 장래 아이가 생겼을 때 저축으로 돌리고 싶다고 쭉 생각했기 때문에 럭키였다.
절연, 휴대폰 번호 변경, 기생충이 다가오지 않도록 멀리있는 병원에 연줄을의지하여 부부가 함께 재취직.
3년째 올해 현재 출산 휴가중.
꿈이었던 마이홈도 손에 넣었다.

관공서에서 「부양해요」라는 전화가 오지만 알게뭐야.
이쪽 연락처를 알리지 않도록 다짐해뒀지만, 관공서가 하는 일이니까 그것만이 걱정.

나에게 있어서 수라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8년과, 언니가 반품되고 나서 절연 할 때까지.
남편과 결혼하고 처음은 가난해서, 통조림 하나를 둘이서 나누어 먹고 있었을 때도 있지만, 괴롭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다.

今までにあった修羅場を語れ【その15】 より
http://kohada.open2ch.net/test/read.cgi/kankon/1449134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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