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4일 화요일

【2ch 막장】초3 딸이 있는 남성과 결혼. 남편과는 도랑이 깊어졌지만 딸하고는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결혼해서 좋았다. 피는 이어지지 않아도 딸이 생겨서 좋았다. 행복하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딸이 대학에 들어갈 때 까지.



804: 名無しさん@おーぷん 2017/04/02(日)11:11:55 ID:vGc
죄송합니다만 매우 깁니다.


30세 때, 지인의 소개로 맞선하여 결혼했다.
상대에게는 초3 딸이 있었지만, 나는 초혼.
실은 연애하고 약혼까지 했던 남성이 있었지만, 약혼하고 나서 알게 된 상대 가정의 종교 문제가 원인으로 파담했던 적이 있어서, 처음부터 여러가지를 알고 난 다음에 맞선하는게 좋다고 생각하게 됐다.

맞선상대 남성은, 전처가 직장 남성과 불륜한 결과 아이를 놔두고 나간지 2년이 지났다.
처음에 확실하게 그런 사정을 이야기 해줬고, 딸이니까 아무래도 아버지로서는 모르는 것도 있으니까 재혼을 결의한 것도 정직하게 이야기해준 것이 마음에 들었다.

맞선으로서는 길겠지만 일년 교제했고, 딸도 아주 따라주었으니까 결혼을 결의.
딸과는 상성이 좋았던 것일까, 비교적 잘 되고 있었다.
조금 걱정이었던 것은, 조금이라도 예정보다 귀가 시간이 늦어지면 현관 앞에서 울고 있었던 것.
「또 버려지는게 아닐까 불안해졌다」
고 하는 것이다.
그것을 듣고, 이렇게 어린 아이가 그런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불쌍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 뒤 한 번 임신했지만, 남편과 의견이 갈라졌다.
여동생이 생기면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과,
「모처럼 생겨난 내 아이를 낳고 싶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
「아이가 생기면 친자식에게 애정을 기울이게 되서, 덤받이에 대한 애정이 희미해지는게 아닐까」
하는 남편.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말해도
「지워줬으면 한다」
면서 양보하지 않는다.
(그러면 처음부터 피임을 제안해줬다면 좋았는데, 임신하고 나서 그런 말을 하다니)
하고, 이 무렵부터 조금씩 불신감이 생겨났다.







805: 名無しさん@おーぷん 2017/04/02(日)11:12:29 ID:vGc
결국 끝까지 낳는 것을 받아들여 주지 않았기 때문에, 지우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스스로도 이상한 정도로, 지워버린 것으로 딸을 길러내기로 각오를 할 수 있었다고 할지, 딸과는 혈연이 아니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사이가 좋아졌다.
반비례하여 남편과의 거리는 멀어져 갔다.

딸도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는 부부 사이의 장벽을 알고 있었던 것 같지만, 이유를 물어봐도 말할 수 있을 수도 없고, 이유를 모르는 대로 남편보다 내 편이 되어주는 것이 기뻤다.
(결혼해서 좋았다. 피는 이어지지 않아도 딸이 생겨서 좋았다. 행복하다.)
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딸이 대학에 들어갈 때 까지였다.

도시의 대학에 진학하고 2년차, 처음으로 생긴 남자친구를 소개하기 위하여 돌아왔다.
「그이하고 결혼하고 싶어」
고 말했다.
「아버지는 틀림없이 반대할테니까 아군이 되어줘요」
고 말했다.
물어보니까 남자친구는 고교 중퇴로, 지금은 선술집에서 아르바이트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직업경력은 미장이나 이삿잠센터, 파칭코 가게 등, 모두 일년 정도 였다고 한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딸의 남자친구가 되는 거라면 불쾌함을 떨칠 수 없었다.
적어도 한 곳에 머물러 있어 준다면.
게다가 모처럼 노력해서 합격한 대학도,
「그만두고 결혼하고 싶다」
고 말했다.
여러모로 쇼크였다.

「대학만은 제대로 졸업해 주세요. 진심이라면 더욱 더. 졸업하고 나서 아버지를 설득하세요」
그렇게 딸에게는 말하고, 남자친구에게는
「진심으로 딸과 결혼하고 싶으면, 최저 3년 동안은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나서 진심을 보여주세요」
라고 말했다.
딸은
「계속 너의 아군이 되어 줬는데 실망했어!」
하고 잡지를 집어던졌다.
처음으로 「너」라고 불렸던 것, 「아군이 되어 “주었다”」는 말을 들어버린게 쇼크였다.
이야기를 듣고 남편은 당연히 엄청 반대.

결국 그 그이와는 그 뒤 헤어진 것 같지만, 다음 남자친구를 데려왔을 때 딸은 임신한 상태였다.
남편의 연줄로 취직하고 반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
남편은 격분해서,
「너의 육아방식이 나빠서 이렇게 되어버린 거다」
하고 욕을 해대면서 때렸다.

806: 名無しさん@おーぷん 2017/04/02(日)11:12:49 ID:vGc
결국 취직한 회사에는 고개를 숙이고, 퇴직하고 결혼해서 출산하기로.
남자친구는 같은 회사 동기였지만, 부장의 지인의 딸을 임신시킨 탓에 무슨 말을 들은 듯 해서, 아주 간단하게 퇴직해서 우리 집에 자리잡고 살게 됐다.
출산을 위해서 귀향했던 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직장도 찾지 않고 하루종일 스마트폰 게임 삼매경.
일을 하던 내가 귀가해도 방이 난장판, 세탁물도 그대로.

딸에게
「집안일 정도는 도우세요」
라고 말하니까
「너가 할 일이잖아」
라는 말을 들었다.
그 날부터 나를 「너(あんた)」라고 부르게 되어버렸다.
나는 어떤가 하면, 그렇게 되어 버린 딸이 낳은 손자를 귀엽다고는 도저히 생각하지 못하고, 혈연이 없다는걸 새삼스럽게 느끼기 시작했다.

간신히 집을 나와서 부모자식 셋이서 가까운 아파트에서 살게 되어서 마음을 놓게 된 것도 잠시, 이번에는 남편의 암이 발각됐다.
솔직히 말해서, 「이것으로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슬픔 같은건 전혀 없었다.

여생선고를 받은 남편은 자택에 돌아가고 싶어했지만,
「일이 있으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고 퇴짜놓아 버렸다.
병실에는 세탁물을 가지러 갈 뿐, 아마 간호사들에게는 기이한 부부로 보였을테지.
피를 나눈 것이 분명한 딸조차 한 번 문병하러 갔을 뿐이었다.

그리고 남편이 죽고, 거의 교류가 없는 친족이 몇사람 모였을 뿐인 장례식이 끝나고, 딸 부부와 셋이서만 사십구재와 납골을 끝낸 뒤 유산분배를 하면서 예상대로 다투게 됐다.
딸의 주장은
「너는 단순한 후처인데 왜 반이나 가져가는 거야」
라는 것.
이 날을 위해서 변호사에게 상담을 했으니까, 담담하게 사무적으로 대응하고 법에 따라서 분배했다.
그리고 딸에게는 인족관계종료신고를 제출했다는 것을 고했다(양자결연을 하지 않았다).
앞으로 일절 관련될 생각은 없고, 이 땅을 떠날거라는 것도.
끈질기게 어디로 가는지 물어봤지만 일절 대답하지 않았다.
「너 하 고 는 이제 타인이니까」
하고 준비해뒀던 말을 마지막으로 내던졌다.

807: 名無しさん@おーぷん 2017/04/02(日)11:13:04 ID:vGc
그때로부터 이제 10년 가까이 지났고, 옛 친구가 경영하는 사무소에서 직장을 얻었다.
거기서 알게 된 남성(이혼남 아이 없음)과 재혼했다.
이제 와서 아이는 바라지 않고, 같은 취미를 즐길 수 있는 관계.

그이에게는 모든걸 이야기했고 이해도 얻고 있지만, 가끔 생각나게 된다.
딸에게 한마디 내던진 뒤, 도망치듯이 이 땅에 왔을 때 신칸선 안에서,
(그렇게 따라주고 사이좋게 살고 있었는데, 저것은 단순한 모녀놀이였던 것일까.
나는 무엇을 위해서 나의 아이를 지워버렸던 걸까)
라고.

딸을 버리고 온 것이 4월 1일.
의식한 것이 아니고 우연히 그 날이었다.
이 날은 온 세상이 묘하게 분위기가 들뜨니까 싫어도 생각나 버린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후회하지 않고, 이렇게 문장으로 만들어 방출하고 이번에야말로 잊어버리자.

スレ立てるまでもないが沢山言いたいこと op10 より
http://ikura.open2ch.net/test/read.cgi/ms/1484802896/

딸이 친엄마랑 친아빠의 나쁜 점만 물려받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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