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5일 수요일

【2ch 막장】나의 담임이 어머니와 언니에게 양다리를 걸쳤다. 언니와 영화보고 귀가했더니 어머니가 담임하고 관계를 하고 있고, 언니가 폭발하자 어머니 「나의 배에는 선생님의 아이가 있으니까」



737: 名無しさん@おーぷん 2017/01/24(火)04:41:48 ID:2UB
수라장이라고 할지, 어머니와 언니가 차지하려고 다투던 남자가 나의 담임이었다.
옛날 일이지만 여러가지 사정 있어서 고민하고 있으므로 투하하러 왔다.
장문으로 질질, 게다가 문재 없지만, 함께 해주시면 감사.
기분이 내키면 조언 같은걸 해주시면 고맙습니다.

모친은 임신결혼(デキ婚)을 노리다 실패할 때마다 씨다른 아이를 낳은 인물.
우리는 결혼경력이 없는 어머니가 낳은 씨다른 세자매.
나는 차녀.




어머니는 아무튼 사랑이 많은 여성으로, 결혼 욕구가 강한 주제에 남자를 보는 눈이 전혀 없어서, 데려 오는 남자는 기둥서방 남자나 기혼자 뿐이었다.
좁은 원룸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현관을 열면 낯선 남성과 어머니가 앙앙 거리고 있는 광경을 맞부딪친 회수는 기억나지도 않는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자란 탓인지, 나의 가치관은 초등학교 중반에는 식어갔다.

나와는 반대로 히스테릭 해져갔던 것이 언니.
서로 욕설을 하는 어머니와 언니를 볼 때마다
(또 하고 있어요)
하고 기가 막혀서, 최대한 관련되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감정적이 되었던 언니 쪽이 상당히 인간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무렵은 아직 여동생은 태어나지 않았었다.

성장하는데 따라서 언니는 반발하던 어머니에게 내면이 닮아가게 되서,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는 원교(援交,원조교제)에 손을 대게 됐다.
어머니와 언니가 빈번하게 일으키는 연애 트러블이란 아무리 실제 피해를 받지는 않고 피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당시의 나의 고민이라고 하면 고민이었다.
아무튼 두 사람 모두 주변에서 야리망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었으니까.

자매사이는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매일 가사를 자매끼리 분담했고, 히스테리와 연애 체질이란 것도 제외하면 훌륭한 언니였다고 생각한다.
전형적인 모죠(喪女)가 되던 내가 걱정됐는지, 언니는 자주 나에게 옷을 사줬다.
학교에서도 고립되어 있는건 아닌지 걱정해서, 이것 저것 「고민하는거 있으면 들어줄게?」라고 말해주는 일도 있었다.

다만, 당시의 나는 언니가 사주는 옷을 입는 일은 없었다.
언니가 무슨 짓을 해서 옷 살 돈을 손에 넣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지금와서 생각하면 트러블 회피만 생각하지 말고 언니를 설득하는게 좋았다고 생각한다.

서두가 길어져서 미안.





738: 名無しさん@おーぷん 2017/01/24(火)04:43:14 ID:2UB
수라장의 발단.
고교 1학년 여름방학에 언니를 태운 담임의 자동차가 러브호텔에 들어가는 것을 목격.
언니는 고졸 뒤에는 프리터였고, 어머니와 언니의 연애 트러블에 말려 들어가는 것이 싫었으니까 특별히 리액션을 일으키지 않고 보지 않았던 것으로 했다.
담임과 교제하기 시작, 언니는 남자 친구나 화려한 생활을 고치고 요리 교실에 다니기 시작하고, 화장도 내츄럴 메이크로 바뀌어 갔다.
언니를 어머니 같은 남자미치광이 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나였지만, 언니의 변화를 보고 있는 동안, 입에는 올리지 않았지만
(이대로 안정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겨울방학에 들어가기 조금 전, 그 수라장이 발발.
휴일에 우연히 언니와 영화를 보러갔다 귀가, 아파트로 돌아와서 현관문을 열었더니……(이하 생략)
눈에 익은 앙앙 광경이었지만,
어머니가 올라타서 허리를 흔들고 있는 상대는 어떻게 봐도 나의 담임.

너무나 지나친 광경에 언니가 발광.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지며 히스테릭하게 고함을 질렀다.
별로 말을 잘 못하는 나로서는 언니를 진정시키는건 어렵고, 허둥지둥 옷을 입는 담임과 전라인 채로 이겼다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던 어머니의 모습으로 봐서, 언니와 담임이 교제하고 있는걸 알고 빼앗았다고 확신했다.
「나의 배에는 선생님의 아이가 있으니까」
진짜로 어머니는 언니를 향해서 그렇게 말했다.

이것이 세번째 임신결혼 목적으로 태어난 여동생.
남자친구가 양다리를 걸쳤다면 누구라도 발광할 테지만, 상대는 하필이면 생모.

계속.
짧게 정리하지 못해서 미안.

739: 名無しさん@おーぷん 2017/01/24(火)04:43:50 ID:2UB
진정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째지는 소리를 지르며 고함치는 언니거기에 끌려서 히트업해버린 어머니가 맞붙어 싸우게 되었고, 말리러 들어갔던 나의 얼굴에 어머니가 집어던진 시계가 히트.
타박상과 눈꺼풀 위를 3바늘 꿰매는 상처를 입었다.

눈꺼풀 베이면 피가 대단해요.
어머니와 언니의 사이에 당황하기만 하는 담임은 믿을 수 없고, 스스로 구급차를 부르려고 하니까 담임이 황급하게 멈췄다.
아마, 공공연하게 드러나는걸 무서워했겠지.
어쩔 수 없으니까 스스로 타월로 얼굴을 누르고 병원에 갔다.

다행히 눈꺼풀 위를 베었을 뿐 안구는 무사했지만, 한동안 왼쪽 눈과 그 주변이 부어서 바위처럼 됐다.
열이 나니까 진통제와 함께 해열제와 같은 것을 처방받았다.
내가 치료를 받고 있는 동안 언니가 병원에 와있었다.
치료실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과호흡을 일으킬 만큼 울었던 것 같아서, 화장이 벗겨져 괴물처럼 됐다.
나의 얼굴을 보고 언니는 더욱 더 통곡.
나는 멍과 상처를 가제로 가리고, 눈에 피가 들어갔기 때문에 안대도 하고 있는 엉망진창 상태로 어떻게든 언니가 우는걸 그치게 하려고 온갖 고생을 했다.
내심은 까다로워진 현재상태를 어쩌면 좋을지 몰라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들었는지, 나의 휴대폰에 모르는 주소에서 메일이 왔는데,
「오늘 일은 학교에는 말하는게 아니야」
라고 쓰여져 있었다.
「무리입니다, 바로 학교에 통보합니다. 교육위원회 쪽이 좋습니까?」
라고 답장하니까, 어머니로부터 미친듯이 전화.
아마, 결혼을 미끼로 딸의 설득을 맡은 거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에게서 온 전화를 받지 않고, 우는걸 그치지 않는 언니에게
「학교에 이것을 통보할건데 괜찮지?」
라고 말하니까, 언니는 이제와서도 담임 걱정을 했다.
(쓰레기 같은 남자한테 헌신하다가 버려지던 어머니를 꼭 닮았다)
라고 생각했다.
「제자의 모친과 언니한테 양다리 거는 남자에게 아직도 미련이 있는 거야?」
라고 물어보니까 분화하는 듯한 기세로 울어서 왠지 간호사 씨에게 내가 혼나는 처지.

담임은 나의 어머니와 언니라고 알면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본인에게 물어볼 것도 없이,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언니의 모교로서, 언니의 클럽 고문이었다.
입학한 당시, 언니를 닮은 나를
「(언니)씨라는 가족은 있어?」
라고 물어본게 담임이다.
가정 방문으로 집에도 왔었고.
아직껏 담임의 심경을 모르지만, 스릴을 맛보고 있었거나, 어머니와 딸에게 동시에 사랑받아 버리는 나 굉장해에 취해있었는가.
어느 쪽이든 최악이라는건 다르지 않다.

740: 名無しさん@おーぷん 2017/01/24(火)04:44:29 ID:2UB
확실히 그 날은 추가시험일이었다.
학교에 연락하고 일련이 사건을 보고하자, 바로 교장 선생님에게 거듭하여 전화가 걸려 오고, 재차 상세하게 사정을 설명하게 되었다.
교장 선생님은 병원까지 나를 맞이하러 나와주고, 언니와 함께 교장 선생님(여성)댁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는 소동이 일어났다.
당연하지만 담임은 해고.
빨리 겨울 방학에 들어간 것도 있어서 그 이래 담임과는 만나지 않았다.

「이번이야말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낼 수 있다」
면서 모자수첩을 손에 우쭐거리던 어머니의 계획은 무너지고, 후일 씨다른 자매인 여동생이 늘어났다.
결혼을 망친 내가 미웠던 것일까,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폭력을 휘두르니까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의지할 수 있는 친척이 그 밖에 없었기 때문에, 졸업까지 교장 선생님에게 신세를 지게 되었다.
언니도 당분간 나와 함께 교장 선생님의 집에 살고 있었지만 여동생이 태어났을 무렵에 기숙사가 붙어있는 일을 찾아내서 자립했다.

교장 선생님이 없었으면 나도 언니도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
그 엄마 이외의 어른의 여성에게 지금까지 연이 없었으니까, 착실한 어른 여성의 삶의 방법이나 가치관을 접하고 눈에서 비늘이 나오는 매일이었다.

언니는 한 번 남자로 실패한 뒤, 이대로는 어머니와 똑같은 인생이 될거라면서 출가했다.
비구니가 되었고 지금은 여승들만 사는 절에 있다.

나는 성인이 된 뒤, 어머니 곁에 있던 여동생을 데려왔다.
나나 언니 같은 아이 시절을 보내게 하는 것은 견딜 수 없었던 것, 연애에 흥미를 가지지 못하고 어차피 결혼 예정도 상대도 없으니까. 남자친구가 있었던 적도 없다.
나와 같이 삐뚤어지거나, 어머니나 옛날의 언니처럼 남성의존이 되거나 하지 않고, 성실하게 자라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길어서 미안.
금년 중학생이 되는 여동생은 어머니의 난교나 출생의 수라장을 모르니까, 언제 어디까지 사실을 이야기해도 좋을지 몰라서 썻다.
말하지 않고 있는 편이 좋을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향후 나이를 먹은 어머니가 무엇인가 해오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고, 그 무렵은 몰랐지만 언니에게 원교를 추천하던 것이 어머니였다는 것도 있어서 경계하고 있다.

今までにあった修羅場を語れ【その19】 より
http://kohada.open2ch.net/test/read.cgi/kankon/1474327100/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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