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도 잘 하고, 내가 시댁에 방문하면 내가 좋아하는 것만 만들어 주었고, 레시피도 가르쳐 주었다.
내가 요리를 만들면 「맛있다!」 고 말해 주었고, 복장이나 머리모양도 「어울려」「귀엽네」 하고 자주 칭찬해 주었다. 내가 건강이 안좋았을 때, 전 남편이 격무로 돌아갈 수 없다는걸 알고, 전 시어머니가 날아와서 간병해주었던 것은 정말로 기뻤다.
나의 친정 부모님도 입을 모아서 「멋진 시어머니구나」 하고 말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1년 전에 전 남편의 외도+불륜녀의 임신이 발각. ↑에서 써있었던 격무도 거짓말로, 불륜녀하고 잘 지내고 있었던 것 같다. 『 “귀엽고 연약하고 지켜주고 싶어지는 불륜녀 쨩” 하고의 사랑을 키워가고 싶다!』 고 홀려있는 전 남편에게 식어서, 아이 없었고 위자료를 받고 이혼했다.
전 시어머니는 울면서 나에게 사과해 주었다. 위자료에 더해서, 소중히 여기던 악세사리를 주었다.
거절했지만, 「받아줬으면 해」 하고 호소해왔다.
전 남편 건은 이미 아무래도 좋아졌지만, 전 시어머니하고 헤어지는 것은 쓸쓸했다.
이혼해서 나가고 나서 부터, 전 시어머니하고는 가끔씩 연락하고 있었지만, 최근 부쩍 연락하지 않게 되었다.
자식은 나와 여동생 둘 뿐으로, 각자 결혼해서 친정을 나왔다. 아버지 70, 나 40, 여동생 38이라는 연령.
아버지에게 지정된 가게에 갔는데, 여자(A씨라고 합니다)가 옆에 앉아 있고, 그 모습으로 봐서 (아, 재혼 이야기일까) 하고 깨달았다. 조금 늦게 여동생이 도착하고, 식사가 시작되기 전에서 아버지가 꺼내온 것은, 역시 재혼 이야기였다.
「너희들, 어떻게 생각해? 정직하게 생각하는 대로 말해줬으면 좋겠어」 라고 말해왔지만, 그 때 처음으로 만난 A씨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으므로 「지금 바로 대답은 할 수 없다」 고 말했더니, 여동생도 『나도 같다』고 말하고, 『그럼 오늘은 식사를 즐기자』하는 흐름이 됐다.
다음날이 일요일이었으므로, 여동생하고 만나서 상담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말했더니, 여동생도 완전히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교제하는 것은 완전히 상관없지만, 호적을 넣거나 하는건 하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유는, 아래에 쓰는 대로. 아버지는 현재 친정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지만, 아버지는 신체가 건강하지 못해서, 옛날부터 계속 비정규로 일하고 있고 어머니가 노력해서 생활을 떠받쳤다.
아버지의 연수입은, 별로 일하지 못했던 해에는 100만도 미치지 못했던 적도 있었다. 공인회계사였던 어머니와, 외가집의 도움받아서 우리들 자매는 대학까지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죽었을 때 남겨준 유산으로 아버지는 지금, 생활하고 있다.
아버지 건이 있었으니까, 나도 여동생도 상속은 자신들 몫은 절세분 정도로 거의 방폐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앞으로 일단은 아버지의 생활은 걱정할 것 없고, 『언젠가 시설 신세를 지는 경우의 자금도 된다』 고 생각하고, 그렇게 해서 아버지의 노후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여동생하고 협력할 생각이었지만, 나는 장남에게, 여동생은 외동에게 시집갔으니까, 솔직히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아버지는 지금은 완전히 무직이지만, 그래도 생활할 수 있는건 어머니 덕분.
그렇다고 해서 『평생 어머니를 생각하며 살아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A씨는 아직 환갑이 된 직후라고 하고, 아버지에게 만약의 일이 있었을 때 어머니가 남겨준 유산이 A씨에게 가는 것은 솔직히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다.
「아이를 갖고 싶다」 고 하는 올케를, 오빠는 「이 일이 끝나면 급료 올라간다는 이야기가 있어. 그렇게 하면 단독주택을 사서 가족계획을 세우자.」 같은 거짓말 이야기로 속이고 있었다. 우연히 오빠의 동료를 만나서, 그것이 거짓말이라는걸 알게 되고 따져 물어보는 올케에게, 오빠는 되려 분노.
무시되거나 반대로 폭언을 듣게 된 올케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오빠의 소행이 판명. 가족을 말려들게 하는 이혼소동이 됐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스무살을 지나자 곧 병사했고,
외동인 내가 결혼하고 집을 나오고 나서
아버지는 혼자서 살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40이 되어서, 아버지가 정년 뒤 재취직 하고 회사를 다시 퇴직했을 때 「재혼한다」 고 이야기 꺼냈다.
상대 여성(A코씨)는 아버지와 같은 나이로, 외동딸이 있는데 결혼한 것도 같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가 한참 지났고, 듣다보면 「산행 취미로 만나서 같이 있으면 즐거웠다」 고 연애 이야기 듣게 되었고, (아버지가 행복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고 납득했다. 본심을 말하자면, (이 나이에 일부러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아도…) 라고 생각했지만, 그 뒤 사이 좋은걸 보고 (잘됐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과연 이 나이가 되면 “새로운 어머니” 라는 감각은 없고, A코 씨도 그것은 똑같았던 것 같아서, 서로 이름으로 부르면서도, 우리 아이는 “손녀” 로서 귀여워 해주었다.
친딸 쪽에도 손주가 있다고 하지만, 멀리 시집가서 별로 만나지 않는 것 같다.
나 자신, 그 따님하고는 재혼할 때 식사모임에서 한 번 만났을 뿐으로, 어쩐지 모르겠지만, (이 사람하고는 맞지 않는데… 하지만 멀리 있으니까 괜찮을까) 하고 생각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남편하고 사귀었으니까 시부모님하고도 오랫동안 면식이 있고, 동거에 저항이 없었고.
실제로, 결혼하고 10년 가까이 되었지만, 시부모님 하고 싸운 적은 있어도 부모자식 간의 싸움 같은 느낌으로 곧바로 화해하고 있고, 저쪽은 스스럼 없는 며느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즐겁다.
시누이하고도 옛날부터 둘이서 디즈니 랜드 가거나, 영화나 쇼핑도 가거나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아이들끼리도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그렇게, 계속 평화롭게 지내오고 있었지만, 재작년, 아주버니가 맞선결혼하고 나서 그 평화가 무너졌다고 할까.
아주버니는 젊을 때(우리들이 아직 결혼하기 전)에 한 번 결혼했지만, 2년 정도로 헤어졌다.
당시 어렸든 아기는 부인이 데려갔고, 아주버니는 계속 양육비를 지불하고 있다. 그런 아주버니(마흔 전후)의 재혼상대는, 나보다 2살 연하의 초혼. 결혼 전에 재혼으로 아이가 있는 것이나, 양육비를 매월 지불하고 있다든가, 당연히 여동생(시누이)과 남동생(남편)이 있는 것, 남동생이 부모님 댁에서 동거하고 있다는 것 등, 이야기하고 있었다.
신부가 『피로연은 하고 싶다』고 말하니까, 친척도 불러서 평범하게 결혼식도 피로연도 했다. 그러니까 아주버니 아내는 자신의 위치는 알고 있을 것.
그런데 결혼하고 반 년 정도 지났을 때 갑자기, 아주버니 아내가 「동거하고 싶다」 고 이야기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