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삼형제의 가운데. 막내로 삼남인 시동생은 위의 둘 하고는 나이 차이가 있고 대학생 때부터 상경하여 독신생활 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은 지역에 각자의 가정을 가지고 있다.
가족 사이는 지극히 일반적으로, 그 나름대로 양호한 교제를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얼마전, 유일하게 독신이었던 시동생의 결혼이 결정되었다.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나이가 되어도 여자친구가 있다는 기색이 없었던 시동생을 걱정하던 시어머니는 아주 기뻐함. (『여성에 흥미없을지도』하고 물었는데 대답하지 않았다고 한다ㅋ) 긴급사태선언이 해제됐을 때, 시동생이 시동생 아내를 데리고 (이 때는 아직 약혼녀였지만) 지역에 돌아왔으므로, 시부모・아주버니 부부・우리들 부부하고 식사모임을 하게 되었다.
시동생 아내는 미스테리어스라고 할까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고 할까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지만, 시동생은 홀딱 반해서 기뻐서 어쩔 수 없다는 느낌으로 사이도 좋아 보였고, 잘됐다 잘됐다 하고 화기애애하게 종료. …하고 생각했더니 갑자기, 「내일 관광안내 해줄게요. 며느리들끼리 사이 좋아지고 싶고」 하고 이상하게 조용했던 아주버니 아내가 시동생 아내에게 권유했다.
「(시동생)씨가 안내해 주신다고 하므로」 「내가 안내할테니까」 하고 둘이서 거절했지만, 『며느리끼리』를 자꾸 말하며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아주버니 아내는 한 번 말을 꺼내면 듣지 않는 데가 있으므로, 시어머니가 「너도 같이 가면 어때?」 하고 이쪽에 권유해왔다.
솔직히 아주버니 아내는 싫어하고, 마이너한 관광지니까 관광 명소가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 1일 업무가 되버리니까 싫었지만, 언제나 돌봐주시는 시어머니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며느리 셋이서 가게 됐다.
다음날, 아주버니 아내가 차를 내왔지만, 처음부터 묘한 분위기. 아주버니 아내는 명백하게 시동생 아내에게 공격적이었다. 예를 들어서 시동생 아내의 직업을 (이과계 전문직? 같은 것) 「오타쿠가 많을 것 같아」 라든가 「역시 오타쿠 써클의 공주 상태야?」 하고 말하는 느낌.
시동생 아내는 「그렇네요, 오타쿠가 많습니다」 「바빠서 그런걸 하고 있을 틈 없어요」 하고 담담하게 대답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거꾸로 아주버니 아내의 신경을 거스른 것 같아서 점점 노골적이 되어갔다.
「(시동생 아내)쨩의 어머님은 스낵바의 마담이지요? 아버지가 없다니, 역시 그런 것?」 「모녀가정인데 외동이라니 노후가 큰일일 것 같네요. 요즘 스낵바 같은거 유행하지 않지요. 제대로 연금 지불하고 있어?」
시동생 아내가 모녀가정으로 음식점을 하고 있다고 들었지만 스낵바인 것은 처음으로 들었고, 이런 상황에서 나는 굳어져 버렸고 아무 것도 말하지 못했고, 과연 시동생 아내도 입을 다물어 버렸다.
아무래도 「불임치료를 시작하므로 돈이 들어가니까, 임대료를 줄여서 비용에 충당하고 싶다」
고 하는데.
아주버니 아내, 그때까지 정사원이었는데, 치료에 시간과 체력을 빼앗기므로 주3일 파트타이머로 전환했다고 하고, 그런 의미에서도 동거가 형편에 좋았다고 한다.
불임치료 건은 잘 모르니까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시부모는 「다소 원조를 해도 좋으니까 동거는 좀」 하는 스탠드였다.
또한, 시부모는 늘 「부부가 사이 좋으면 그것이 제일, 아이는 내려주시는 거라고 하니까 별로 심각하게 되지 않는 쪽이…」 라고 말했었다. 즉 손자를 재촉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주버니에게 원인이 있어서 불임인 것 같고, 그것을 방패로 「부모의 책임으로서 협력해야 한다」 고 설득하고, 동거도 원조도 양측 모두 획득한 것 같아서 시부모 참패.
전에도 『불임치료 비용을 내라』고
말해왔다는 며느리 이야기 읽었지만,
나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론이야.
동거가 시작될 때 까지는 시댁에 자주 가고 있었지만, 우리집에는 아이가 둘 있으니까 가기 어렵게 됐다. 시어머니에게서도 「큰 며느리를 너무 자극하지 않는 쪽이 좋으니까 이벤트 같은건 이외는 이쪽에서 그쪽으로 갈게」 라고 말했었고, 이쪽에서 시댁에 가는 횟수가 부쩍 줄었다.
나는 독친의 영향으로 음식에 관심이 없었다. 솔직히 식사가 고통스러워서 학교 급식 조차 싫었다. 살려면 어쩔 수 없이 먹고 있는 느낌이었으니까, 성장기에 충분히 성장하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도 비쩍 마른 중학생 같은 용모였다. 사회인 4년차 때 아내하고 만났지만, 나의 인생이 확 바뀌었다.
아내는 요리 실력이 굉장하여, 솜씨 좋게 뭐든지 직접 만든다. 먹는 것이 즐겁다고 생각한건 처음이었다.
이젠 신장은 자라지 않으니까 여전히 꼬마지만, 명백하게 피부 윤기가 깔끔하게 되었고, 건강하게 됐다. 그것을 동료 남자 4명이 헐뜯어 오니까 기분 나쁘다.
우리 딸하고 남편의 여동생의 딸(이하 A코라고 하겠습니다)가 우연히 같은 해에 결혼하게 됐지만, 딸보다 A코 쪽이 3개월 정도 뒤였으므로, 딸의 결혼식 초대장이 먼저 송부 되게 되었는데 그것을 보고 A코가 삐져서 울고 있다고 시누이가 시어머니에게 상담하고, 귀찮게 되었던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A코가 예정하고 있었던 식장하고는 등급이 상당히 다른 것 같아서, 같은 해에 같은 친척이 모이는데 비교받는 것이 싫다고 울고있다, 나(시누이)도 싫다, 평생 한 번 있는 결혼식이니까 비참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고, 돈 어떻게든 해줘! 도와줘!
라는 것이라고 한다.
남편은 지금은 건강하지만, 당뇨병(어머니 쪽)하고 암(아버지 쪽)가계로, 시댁조부모님이 당뇨병・간병필요인데 노망이 들어있고, 시아버지가 암인데 재작년 구조조정 되어서 무직. 내가 두 분의 간병과 통원을 도와드리고 있다.
결혼은 했지만, 아이 낳아도 하드모드인 인생이 되는 것이 눈에 보이고 있으니까, 아이는 만들지 않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두 명이라고 결정했지만, 이젠 무리일듯.
살고 있는 곳이 시골이니까, 친구 교제 같은 것도 농후하고, 내가 아이를 좋아하니까 주위에서 「아이 아직?」「필요한 물건 양보해줄게」 라고 말해오지만 「나의 병하고 남편의 집안 일이 있으니까」 하고 대답하게 되었다. 모두 시댁이 큰일이라는걸 알고 있으니까, 그 이상은 아무 말도 해오지 않았다.
그 동기에게는 실은 30대 후반의 미인 여자친구가 있고, 2사람 모두 결혼이라는 형태는 취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자유로운 관계로서, 실은 벌써 5년에 걸친 관계이며,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할까 고민할 때, 「괜찮아! 당신이라면 절대로 괜찮아!! 잘 되지 않아도 그 때는 내가 평생 길러줄테니까 마음껏 해봐!!」 하고 호쾌하게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창업을 내딛게 됐다든가, 여러가지를 알게 되고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