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 철종 때, 강원도의 어느 두메산골에는 이상한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떠돌고 있었다.
이 마을은 워낙 깊은 산중에 자리잡고 있어서 장에 가려면 꼭 앞산을 넘어야 했는데, 밤에 혼자서 산을 넘어가는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었다. 산 중턱에 있는 오래된 신당에서 귀신이 나와 사람을 잡아간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을 입구에 있는 주막에서 밤을 보내고 날이 밝으면 산을 넘었다.
어쩌다 밤에 산을 넘어야 하는 사람은 주막에서 일행이 될 사람들을 기다린 다음 꼭 여러 명이 짝을 지어 산을 넘곤 했다.
날이 어두워지고 비가 내리자 주막은 사람들로 북적댔다.
친구로 보이는 두 사내가 마루에 걸터 앉아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이봐, 소를 팔았으니 술 한잔 사야지."
"이보게, 소 팔고 술 사면 남는 게 뭐 있나."
"어허, 그러지 말고 한잔 사게."
"좋아. 정 그렇다면 나와 내기를 하나 하세."
"내기? 좋지. 내기라면 내 자신 있네."
"자네가 저 앞산에 있는 신당까지 혼자서 갔다 오면 내가 술 값으로 열 냥을 내놓지. 단, 그 곳에 갔다 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반드시 신당에 있는 물건 하나를 가져와야 하네."
"그런 소리 말게. 다른 거라면 몰라도 그건 싫네. 내 목숨이 뭐 열 개라도 되는 줄 아나."
이 때, 하얀 소복을 곱게 차려 입은 젊은 여인이 등에 어린 아기를 업고 주막에 들어왔다.
아기는 배가 고픈지 앙앙 울고 있었다.
"아주머니, 아기가 하루 종일 먹지 못해서 그러는데, 먹ㅇ르 것 좀 주세요."
"거지에게 줄 건 없어. 먹고 싶으면 돈을 내, 돈을."
주막집 여자는 냉정하게 거절했다. 그런데 여인은 두 사내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유심히 듣고 있더니 자기가 그 곳에 갔다 오겠다고 했다. 사내들은 젊은 여자 혼자서는 위험하다고 극구 말렸지만 여인은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산에 오르려고 했다.
"좋소. 그렇다면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이것을 몸에 지니고 가시오."
"한 사내가 기둥에 걸려 있던 낫을 여인에게 건네주었다."
"아가야, 열 냥 벌러 가자."
여인은 등 뒤에 우는 아기를 달래면서 이렇게 말하고는 주막을 나섰다.
그녀는 드디어 신당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갓다. 신당 구석에는 누가 켜놓았는지 초가 희미하게 타고 있었ㄷ다. 촛불에 비친 무시무시한 벽화가 그녀의 머리털을 곤두서게 했다.
'옳지. 저걸 가지고 가면 되겠구나.'
여인은 초가 꽂혀 있는 촛대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뒤에서 누구가가 여인의 머리칼을 와락 쥐었다. 그녀는 너무 놀라서 들고 있던 낫으로 허공을 수없이 갈랐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쏜살같이 산을 뛰어 내려왔다.
주막에 도착한 여인은 사내들에게 촛대를 보이며 손을 내밀었다.
"으아-악!"
사내들은 열 냥을 땅에 던지고 주막을 뛰쳐나와 도망가 버렸다.
그녀는 이상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았다. 아기를 쌌던 강보는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끔찍하게도 등에는 목이 없는 아기가 두 손으로 엄마의 허리를 꼭 껴안고 있었다.
그 이후로 여인은 미쳐서 그 산을 헤매다녔으며, 지금도 달이 없는 밤이면 그 산에는 아기 울음소리와 함께 처절한 여인의 음성이 들린다고 한다.
"아가야, 열 냥 벌러 가자. 열 냥 벌러 가자……."
2013년 8월 16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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