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중학교에서 여러가지 알고서 식었다. 가르쳐준 사람이 상당히 위험한 사람으로, 덕분에 날뛰거나 길을 벗어나는 일도 없고. 나는 부모(와 여동생)에게 복수로서, 여동생이 제멋대로 구는데 엄격하게 대응하는걸 그만두고, 응석을 마구 받아주었다.
결과, 여동생은 나를 심부름꾼이나 노예처럼 취급, 함부로 부르고. (가끔씩 일부러 그러는 듯이 「언니?」하고) 부모는 거기에 질질 끌려가듯이 나를 여동생의 부속물 취급. 얼른 경제적으로 여동생에게 봉사할 수 있도록, 대학 따위는 당치도 않다, 고 고등학교도 보통과가 아닌 곳으로.
졸업 뒤, 현지의 견실한 곳에서 2년 근무, 그 동안 급료는 전액 몰수, 월 수천엔의 용돈으로 지냈다. (필요품은 부탁하면 사주었다. 나의 의견은 무시로, 저가인 것이 최중요 사항.) 3년 지나서 보너스(직접 전달)가 나와서, 그걸 가지고 줄행랑.
착지점에서 근무처에 연락, 사정을 이야기 하고 「독집안에서 도망치니까 그만두겠다」 고 고했더니 상사, 「먼저 부모님하고 대화를」 하고 잠꼬대. 「아아!? 너도냐?」 하게 되었더니 사과해왔다. 이러니 저러니 해서 어떻게든 원만퇴사했다.
상기했던 위험한 사람에게도 (원래 근처의 아줌s이 아니라 언니) 연락해서 살 곳을 소개받고, 일을 찾아서 거기서 지금도 일하고 있다. 뭐 그 나름대로 힘들기는 하지만, 급료가 전액 자신의 것이란 좋구나.
당시 다들 40세였지만,
시간이 있는 사람들끼리 2차모임
(이라고 해도 찻집에서)
을 했을 때 「남편하고 돈하고 어느 쪽이 소중한가」
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어느 쪽을 고를 것인가』는 아니고
『어느 쪽이 소중한가』
대부분의 사람이 적극적으로 『돈!』이라고 하는건 아니고, 얼마동안 고민한 끝에 『궁극의 선택이라고 말한다면, 돈일까』 하는 느낌이었다. 「남편은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매일 먹을 것에 곤란하고 살 집에도 곤란한, 그런 빈곤의 밑바닥이 되었을 때, 틀림없이 여유가 없어져서 지금하고 같은 기분으로 남편을 사랑할 자신이 없다」 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것이 아이냐 돈이냐 하고 선택한다면 고민하지 않고 아이겠지만.
나는 수제가 정말로 무리이지만, 그 선배는 까다로운 괴롭힘 같은거 하는 사람이라, (거절하면 미움받아서 귀찮아진다) 고 생각해서, 받아놓고 몰래 버리고 있다. 먹을걸 버리는 것이 상상 이상으로 스트레스라, 과장스럽지만 한때 병들어 버려서 5킬로 마르고 피부도 거칠거칠 해졌다.
중3일 때 학년 소식지에는
매달, 학교 선생님이 1명이나 2명,
좋아하는 책이나 감명받은 책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었다.
나의 담임은 대학을 막 나온 영어 여성 선생님으로, 외국의 책을 소개하고 있었다. 「이 책은 미국(영국이었을지도)에서는 유명한 영 어덜트 소설이며, 내가 중고교 때 자주 읽고 있었습니다. (중략) 영 어덜트 소설이란 단어는 모두 알고 있겠지요? 신경 쓰이는 사람은 조사해 주세요!」 같은 것이 써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때 처음으로 영 어덜트 소설이라고 하는 단어와, 어덜트가 「어른」「성인」을 의미하는 것을 알았다.
어쩐지 모르게, 어덜트 비디오의 이미지로 『야하다』든가 그런 의미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다른 반친구도 어덜트의 진짜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있어서, 바보 같은 남자가 「어덜트ㅋㅋ」 하고 낄낄 웃었던걸 기억하고 있다. 덧붙여서 영 어덜트 소설이라는 것은, 십대나 젊은 어른 대상으로 쓰여진 소설을 가리킨다고 한다.
어머니도 “어덜트” 의 의미를 몰랐던 것 같아서, “어덜트” =『야하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어쩐지, 『A(←옛날, 나를 괴롭혔다)가 코로나 피난으로 현지에 돌아와 있다』
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만이 아니라 몇 사람이나 번갈아 표적이 됐으니까, A의 피해자는 잔뜩 있다.
같은 세대뿐만 아니라 후배도 겪었고, A의 형도 동류였으니까 A일가 자체 그런 느낌.
그 탓인지 조속히, A일가 포위망이 깔렸다. 포위망이라고 할까, 정보공유해서 멀리서 바라보며 접근하지 않는 느낌. A부모와 교제하던 이웃들조차 더욱 시골로 도망갔다.
시시하구나, 라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별로 A에게 동정하는 것도 바보 같으니까 방치…하고 있었더니, A가 예전 피해자들에게 돌격하기 시작했다. 어쩐지 사죄 같은 대사를 소근 거린 뒤에 현지에 돌아오게 된 변명. 코로나 피난이 아니라, 『 “아내에게 속아서” 집과 아이와 직장 잃었다』 든가 뭐라든가.
때때로 이야기가 맞지 않아서
대화하는 것이 힘든 친구가 있었지만,
정말로 다른 세계선에서 살고 있다는 설이
내 안에서 농후하게 되어버렸다.
이젠 코로나 이야기가 몇 번 나오고 몇 달이 지났는데 코로나를 일절 신경쓰는 기색도 없다. 이야기에 올리는 일도 없다.
이쪽이 2주일 발열해도 매일 억지로 외출을 강요. 「여행하러 가자」 고 제멋대로 구는걸 연발. (너는 이런 시기에 이렇게 장기간 열이 내려가지 않는 놈하고 접촉하는거 무섭지 않는 거야?) (아니 열 나는 놈을 여행에 데려가려고 하지마) 하고 여러가지 말하고 싶은게 있었지만, 일단 설득해서 전부 백지로 돌렸다.